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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오늘의책] 논어 제1편 학이. 1장

 

원문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기에 번역본을 통해 그저 내가 생각하고 내가 사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교육, 사교, 자기성찰이라는 3가지 외 많은 의미가 담긴 첫편 첫장의 말씀이라 생각한다.

1. 교육

어린시절 공부를 엄청 싫어했다. 배운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햇다. 공부는 못하고 맨날 친구들과 오락실과 운동을 하면서 지냈던 초,중,고 시절에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의 강요에 못이겨 공부를 했지만 즐겁다는 생각으로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배움의 즐거움을 몰랐고 그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배운다는 것이 즐겁고 기쁘지 않고 그냥 했다. 꼭 공부만이 교육은 아니다. 운동도 게임도 모두 교육(배우고 익히고)을 통해서 잘해지는 것들이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 교육을 받아야한다. 물론 0.1%의 천재들은 한번에 다 안다고하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영화, 드라마 등에 나오는 가상 인물로 생각한다.

한글부터 산수, 영어, 국어, 미술, 음악 등의 교육은 즐거운 교육이 아닌 즐겁지 않은 교육이였다. 생각해보면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배운다는 것을 즐거워했다. 또한 내가 잘하는 것들을 보면 그것에 대해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교육을 할 때는 정보성 교육보다 우선시 해야하는 것이 이 "즐거움"을 먼저 "교육"하는게 먼저가 아닐까?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안다면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주체자로서 현재와 미래를 더욱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칼비테의 교육법을 주제로 토론을 나누었었다.

 

2.사교

나는 어릴적부터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사람에 대한 상처라는 핑계로 먼저 다가가는 모습이 줄어들었다. 친구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드 아이들이 원하는 것(장난감, 게임정보 등)을 공유(주고받기)하면서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보는 낯선 사람에게 내가(낯선사람) 다가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고 인간의 시기와 질투로 미워하기도 미움을 받아보기도 했으며 그런 다양한 경험으로 현재의 내가 된 것 같다.

주짓수를 하면서 친해진 형, 누나, 동생 - 지금은 전부 쉬고 있다.



20대 때에는 30,40대 그 이상의 분들에게 연락을 하면 "고맙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당시에 왜 그분들이 나한테 고맙다고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30대) 나는 나는 왜 그분들에게 연락을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인맥관리"라는 허울뿐인 연락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걸 느낀 분들이 "고맙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연락을 해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서로서로 바쁜 일상을 살면서 연락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는 늘 바빴다. 지금도 바쁘고 앞으로도 바쁠거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는 사람들을 더욱 바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로간의 안부와 만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연락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제도, 오늘도 친구네서 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함께 웃고 떠들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이 글을 적은 후 요즘같은 어지러운 시국에 연락이 뜸했고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미뤄뒀던, 곧 연락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3. 자기성찰

우리(사람)는 자신이 한 것에 대한 보상과 증명을 바란다. 이건 인간이 가진 욕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욕구에는 다양한게 있다. 식욕, 물욕, 수면욕, 성욕 등등..인간으로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지나친 욕구(과욕)는 화를 부른다. 많이 먹으면 체하거나 비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작용이 있는 것처럼 잠을 너무 많이 자도, 많은 것을 가지려해도, 관계를 많이 가져도 그 사람에게 그 욕구들은 화를 부르게 된다. 

남이 알아주기를 원해서 어떤 행위를 한다면 그 가치는 100에서 50으로 50에서 25로 25에서 10으로 점점 가치가 줄어들 것이다. 내가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사람들이 알아주면 고마운 것이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좋다. 공자는 그런것이 군자다운거라고 하셨다.

주짓수를 4년간 수련하면서 받은 퍼플벨트

이 부분을 보면서 양날의 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군자가 될수도 소인이 될수도 있는데 논어와 책을 보면서 되새김으로 소인에서 군자가 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양철학과 종교철학에는 "신"이 존재한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다.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에서 "신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신다."라는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종교가 있다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한 행위를 "그분"들이 보시고 있으시고 종교가 없다면 "조상님"이 보고 있으실 수 있으며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나 자신"이 보고 알고 있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말고 떳떳하게 살기위해서는 "누군가(신, 조상, 자신)" 자신을 늘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좀 더 "군자"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을 하고 위해 떠났던 여행(강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