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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 기록을 남기다 : 친구의 농도

 

"친구의 농도"

 

나에게는 8명의 베스트 프렌드(베프)가 있다. 어떤 사람들에 비하면 꽤 많은 친구들일지도 모른다. 그 친구들도 나를 베프라고 생각할지, 그 친구들끼리 서로가 베프라고 느낄지는 모르겠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바쁘게 지내고 있는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상을 했다. 기상 시간은 6시 30분. 눈을 뜨고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을 켜서 연락 온 게 없는지 확인을 했다. 한 친구가 단체방에 한 줄의 글을 남겼다.

'애들아 울 아빠 돌아 가셨다.... 05:02'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따갈게'

- 우리파 단체방 -

부고는 늘 갑작스럽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정신없을 친구가 메시지를 남겼다. 처음 메시지를 확인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

'연차를 낼까?'

'지금 바로 갈까? 가도 되는 걸까?'

'제일 친군데?'

'가고는 싶은데 부담이지 않을까?'

--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되뇌면서 현실과 타협을 했는지 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사는 친구가 일어나서 친구의 부고를 봤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

"일 끝나고 갈 거지?"

"그래야겠지?"

"그럼 나도 그때 맞춰서 같이 가자"

"........... 너 먼저 가."

"??"

"먼저 가서 있어주고 다른 애들이랑 시간 맞춰서 먼저 가"

"응, 알았어"

--

 

사업을 준비하는 친구는 출퇴근을 하는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시간의 유연성이 있었다. 그래서 난 나랑 같이 가지 말고 먼저 가기를 권유했다. 사실 권유보다는 강요에 가까웠다. 내가 생각하는 8명의 친구(나 포함)는 그런 사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누구랑 누구랑 시간을 맞춰서 가느니,
부의금은 얼마나 해야 하느니, 
오늘 가니, 내일 가니,
미신을 믿어서 가야 하는 거니, 말아야 하는 거니,
첫날을 가는 게 아니라니,,

 

내 생각과는 다른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그런 말들에 나는 적잖은 실망을 하면서도 그 친구들을 이해하기로 했다.

 

나는 이상주의적인 삶을 살고 싶은 거 같았다. 친구면 힘들 때 바로 달려가고, 앞뒤 재지 말고 직진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현실을 생각하면 출근을 하고, 업무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적잖은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2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때 베프 중 한 명의 아버님이 투병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회사에 이야기해서 휴가를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현실과 타협을 하며 호주에서 아버님을 기리는 모습으로 하루를 살고, 부의금을 좀 더 하고 친구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하며 스스로를 위로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친구들은 같은 한국 땅 하늘 아래, 고작 3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으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고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니꼽고 화가 났다.(사실 20대 때 이런 부분으로 언쟁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때 생각이 나면서 '나도 현실과 타협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어~ 바빠?"

"아니야, 말해. 괜찮아?"

"응, 괜찮아. 다름이 아니라 일요일에 뭐해?"

"일요일에? 발인 때 있어야지"

"운구 좀 부탁하려고"

"운구?"

"아버지 관 드는 거 있어"

"당연히 괜찮지"

"고맙다"

"맘 잘 추스르고 있어, 끝나자마자 갈게"

"응"

--

 

전화를 끊고 또다시 바로 뛰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고, 퇴근하고 다시 일을 하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내 인생이 '별로구나'라고 생각했다. 

 

업무가 끝나고 두 번째 일을 마치니 시간은 어느새 10시였다. 씻고 준비를 해서 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아무것도 챙기는 거 없이 운전대를 잡고 출발을 했는데 배터리가 간당간당..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핸드폰은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앱을 꺼버리고 저전력 모드를 켜고 화면의 밝기를 줄이면서 3%남짓한 상태에서 장례식장에 도착을 했다. 

 

언제 와도 낯선 이곳. 11시가 넘어서 도착해서 그런지 장례식장은 전체적으로 적막했고, 고요했다. 혼자서 빈소를 찾아 걸어가면서 친구의 모습을 떠올렸다. 빈소에는 형수님만 계셔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배웅 나간 친구가 돌아왔다. 내가 보기엔 괜찮지 않은데 다들 괜찮은 거 같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

"늦어서 미안"

"괜찮아, 밥 먹었어?"

"먹어야지"

--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들어가 동창들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러 갔을 때 내가 생각한 베프 8명 중 한 명도 없다는 게 나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관계가 아녔을지도 모른다.

 

자정이 오고 동창들은 다 함께 귀가를 했다. 가정이 있는 친구, 다음날 일정이 있는 친구 등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조문을 드리고 들어갔다.

홀로 남게 되었는데 한분씩 손님이 오시고 친구는 오신 손님을 맞이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혼자 이렇게 있는 게 쟤한테 부담이 되려나..?'

 

생각을 마친 후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인사드리고 왔다 갔다 힘들 때, 내 자리 와서 농담 치고 편하게 술 한잔할 수 있을 거야.'

 

친구가 신경이 쓰일까 봐 앉아 있는 곳 사각에서 보이지 않게 혼자 술잔을 기울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친구는 손님들 보내고 마지막 남은 나와 친구의 대학 친구를 한자리에 불러 함께 이야기를 했다.

 

--

"일루 와, 얘도 혼자 왔으니까 같이 먹자'
"응"
"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베프, 얘는 초등학교 때부터 베프야. 둘 다 내 베프니까 인사해"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OOO에요."
"시 x ㅈ나 어색하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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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혼자 있으면서 어색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함께 자리를 하면서 친구의 베프를 알게 되었다.(참고로 남자임.. ㅋ)

셋이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의 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 같은 친구니까 농도를 생각하면 안 되는데..

오늘 OOO의 마음을 느낀다.(OOO는 베프 중 가장 먼저 아버지를 잃은 친구다.)
핑계를 대면서 안 오고 이거재고 저거재고 하는 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친구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차라 친구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나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망감과 서운함이 들었는데 당사자인 친구는 오죽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어느새 시간은 3시가 넘었다. 계속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하루 종일 피곤했을 친구도 쉬어야 하기에 친구의 대학 친구는 주변에 구한 숙소로 향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오전 수업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서 가야 했지만 친구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기에 친구랑 함께 잠에 들었다.


이날 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친구들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을 할 정도로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는 하루였다. 처음에는 작은 감정선이 자극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극받은 감정선은 조금 커져서 눈물이 흘렀다.

 

왜 눈물이 흘렀을까..

이 대화를 떠올려서 그랬던거 같다. 대화를 떠올리니 감정선이 요동을 친거 같다.

 

--

"난 내가 첫날부터 가는게 맞는지 오바인거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냥..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냥 친구가 기다려지더라. 그냥 기다려졌어."
"..."

--

 

 

다음날도 수업이 끝나고 가서 함께 있고, 그다음 날에도 가서 발인날 운구를 모시고 아버님을 모시는 곳까지 간 후 헤어졌다. 

 

내가 생각한 그 친구의 농도는 '짙었기 때문에'